LIFE/DIARY

001. 4년차 병원 취업과 퇴사를 떠올리며

쭈루짱나눈짱 2024. 2. 1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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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 일을 시작한 지금에서야 지난 병원생활을 돌이켜볼 여유가 생겨 한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일을 시작한 계기는 단순히 관련학과로 진학을 했고, 국시를 쳐서 면허를 땄고, 졸업을 했기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병원취업트리가 그렇듯이 그렇게 사회에 내던져지자마자 취업해 일을 시작했다.

첫 직장은 종합병원 검진센터였는데, 한국야쿠르트 임원이던 한 사람과의 마찰을 계기로 퇴사했다.

이제는 과정이 조금 가물가물해졌지만 대충 기억나기로는 특수검진에 관한 안내 건이었는데, 반드시 받아야한다던가, 법적으로 정해진 사항이라 검진을 받지않으면 법적책임을 물 수도 있다던가 뭐 그런 안내를 했더니 협박하는거냐고 수화기너머로 소리를 지르고 팀장을 바꾸라는등 크게 컴플레인을 걸어왔었다.

통화의 끝이

"당신 이름이뭐야? 오라고해서 가긴 하는데 두고 봐"

였는데 실제로 이 사람이 병원에 와서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지르고 화내고 난리도아니었다.
전화상으로 안내드린부분은 메뉴얼적인 부분이고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라는 해명과 함께 컴플레인을 해결하고자했지만 대화는 진척이없었고,
내가 기분이 더러워서 안되겠느니, 이 병원이랑 한국야쿠르트 검진협약 끊어버리겠느니 소리를 고래고래 지를뿐이었다.
결국 팀장님이 내려와서 나에게 나가있으라고했고
1시간정도 시간이 지나 다시 검진센터에 들어갔을땐 평소의 분위기로 돌아와있었다.

이 사건 자체만 놓고보면 흔히 있는 컴플레인건으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저 사건이 일어나고 몇시간 뒤 과장에게 호출을 받아 올라간 면담자리에서 나는 퇴사를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과장은 내가 상담실로 들어오자마자 잔소리를 시작했다.
이 모든 사건은 전적으로 네가 잘못한것이며 너의 응대능력부족이고 노력부족이라며 질책해왔다.

그 자리에서는 네 잘하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모든 직원이 공감해주었던 그 임원의 비정상적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하려 하지않고 나의 잘못에만 포커스를 맞춰 얘기하던 과장의 리더쉽에 크게 실망했고 이 사람 밑에서는 일을 할 수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날 팀장님에게 퇴직의사를 전했다.

팀장님은 연차와 상관없이 본인재량으로 4일이든 5일이든 휴가를 보내줄테니 마음을 좀 식히고 오고 계속 일했으면 좋겠다고 회유하셨으나 지금의 제가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것같다고 거절을 표현했고, 팀장님도 몇 번 더 붙잡으시면서 얘기하셨다.
솔직히 처음에 왔을 땐 크게 기대안했는데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계속 함께하고싶지만 네가 그런상태라면 어쩔 수가 없지 그래도 마음이 바뀌면 다시 얘기해라. 이 사직서는 일단 수리안하고 가지고있겠다고 말하시고는 그 자리를 정리했다.

몇일뒤 마음이 확실히 그만둔다고 정해진것같다고 재차 의사를 전달하자
나중에 네가 일을 할때 걸림돌이 되지않도록 퇴직사유는 개인사정으로하지말고 학업으로 적어내라며 사직서를 정정해주시고는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주신 기억이난다.


그렇게 백수가 되고 1년넘게 취업을 못했다. 사실 이때라도 취업의 난이도를 제대로 알았어야했는데
어련히 되겠지 같은 생각으로 흘려보내다 최후에는 상대적으로 취업난이도가 낮은 요양병원으로 낮춰 취업을 하게된다.
이 시기에 지원한 전국의 병원만 50군데가 넘는 것 같다.

일은 제법 시간이 널널했고 그러다보니 맡은일이 아닌것도 하나씩 손대서 처리하다가 끝내는 병원전반에 걸친 모든일에 관여하게됐다. 병원에서도 사람이 급해서 나를 빨리 뽑았었지만, 나도 일이 급해서 이것저것 빨리배우려하다보니 실장눈에 들어 1년차 연봉협상시기에 직급인상과 함께 봉급도 30만원 인상받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재밌었고,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유대도 좋아서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약 1년반정도 지났을 때 쯤 회생절차가 끝나고 이사장과 임원진이 바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사장과 실장은 함께 움직이는 팀이었고, 여기에 오기전에도 김해쪽에서 하나를 회생해 다른곳에 넘겨주고 여기로 넘어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제 또 다른 요양병원을 찾아 나갈예정이었던 것 같았고 그걸 직원들은 대충 눈치채고 있는듯했다.

내가 떠나는 그날까지도 병원직원들은 내가 실장과 함께 병원을 옮기겠구나라고 생각할정도로 실장에게 많은 일을 받아 배우고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실장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몇 가지 사건으로 눈밖에 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21년 9월에 10월 중에 한글날 등 대체공휴일이 끼었던시기에 근로자들 휴무건으로 법령을 알아보고 보고해달라고하여 고용노동부지침과 법령해석등을 A4용지에 정리해서 보고했던 적이 있다. 당시에 실장은 주5일제 구조에따른 무급휴일등을 이유로 대체공휴일을 왜 휴무를 주어야하는가, 간호과는 3교대 근무기때문에 애초에 대체공휴일이 의미가 없지않은가, 원무과는 간호과 업무에 맞춰 따라가야하지않는가 등의 이야기로 휴무에 부정적인 입장을 비췄고, 나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변경등에 따라 적용이 다르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대충 나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반차사용시간과 점심시간 교대근무로 실질적 휴게시간이 없는 근로환경문제등으로도 이야기를 했었고
해당 건으로 회의 중에 실장의 의견에 부정적으로 나왔던 내 태도를보고 본인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던것같다.

얼마뒤 이사장이 바뀌면서 새로운 체제로 갈것이고 그래서 너와 계약을 더 연장하지않기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조금 어이가없었으나 나도 여러모로 마지막에 실망했어서 그렇다면 이 달 말까지 일하고 퇴사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퇴사하는날 한방원장님이 따로불러내서 이야기해주시길, 실장이 나와있었던일들을 자신에게 얘기해주었고 병원은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이기때문에 네 행동에대해서 한번 고민해보는게 좋을것같다는 말과함께 고생했다 다음에 밥한끼먹자라고 하시며 30만원정도 쥐어주셨다.

많은 경험을 얻어갔던 곳이었지만, 요양병원이란 환경 자체에대해서는 더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 계기기도했다.
그래서 추후에 취업활동을 할 땐 요양병원은 다시 최후의 선택지로 미루고 생각하기로했다.


앞서 백수생활이 길었던 경험으로 이번에는 오래 쉬지않아야겠다고 생각해 여기저기 많이 지원했다.
경력을 살리기엔 급성기와 요양으로 갈라진 형태였고 부서마저도 달라 업무적으로 연차를 인정받기도 쉽지않았다.
그래도 스텝업을 하려면 종합병원급 이상을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전국의 병원에 지원을 했지만
면접은 몇군데 가보지도 못했다.

그나마 보훈병원이 인턴이 유일하게 면접에 들어갔던 케이스였고, 그마저도 탈락했었다.

헌데 2월의 어느날, 보훈병원에서 자리가 생겼다며 오시겠냐는 연락을 받았고 흔쾌히 하기로했다.
하지만 인턴생활은 직장보다는 아르바이트에 가까웠고 업무적으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때문에 보훈병원에 다니면서도 계속해서 다른곳에 이력서를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가곤했다.
실제로 병원측에서도 그걸 장려하고 있었고, 면접을 보러갈 때는 휴무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몇 번의 면접이 있었으나 그 마지막관문을 통과하지는 못했고, 인턴생활은 어느덧 종료시기가 가까워졌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기간연장을 할거냐고 물어보셨지만 더이상 다니는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들어
기간은 연장하지 않겠다고했고, 9월30일을 마지막으로 보훈병원과의 동행도 끝이났다.

여차저차 4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후 약 6개월간 여기저기 취업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않았다.
너무 많은 실패를 경험해서그런가 나는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아니지않을까라는 생각에 점점 잠식되어
자존감이 갉아먹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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